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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개론 강의 듣다가 냈던 숙제입니다. 한 글자도 수정 안하고 포스팅~ 후후후; 뭔가 글을 쓰긴 써야 하는데 하도 안 써져서 맥주 한 병 마시고 2시간만에 좌라락~ 써내려간 글입니다-_-;

강풀, [26]의 감정적 접근법에 대한 지지

2000-11079 통계학과 이상복

강풀 그리고 웹툰

 

그날 이후

대낮에 금남로를 걸어본 적이 없었다.

 

그 햇빛 찬란한 거리를

나는 걸을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

사람들의 피를 먹고 햇빛이 찬란한

금남로 거리를 한번도 대낮에 걸어본 적이 없었다..

 

아니, 걸을 수가 없었다..

 

14화에서 조직의 큰형님이 내뱉는 위의 독백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특히 14화에는 저런 깡패도 깊은 생각이 있다라든가 남자중의 남자멋지다. 그리고 감동스럽다혹은 참 세상에 저런 사람이 몇이나 될런지와 같은 댓글이 무수히 달려있었다. 단적으로 이 14화와 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만 봐도, 강풀은 [26]에서 감정적인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이는 강풀의 기존 작품들 성향에서도 두드러지는데, 강풀이라는 작가 개인에 초점을 두는 것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므로 이에 대한 논의는 생략한다. 다만 웹툰은 그 매개의 특성상 소설이나 혹은 코믹스(만화)와 달리 프로 작가주의 혹은 본격 장르적인 면모가 약한 대신 개인적, 일상적, 대중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점은 지적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보면 운동권 출신인 강풀이라는 작가에게는 웹툰이라는 매개가 더할 나위없는 의사 표현의 수단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는 작가 자신이 더 늦기 전에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라고 고백했듯 뚜렷한 정치적 의도가 이 작품에 깔려있음을 뒷받침한다.

 

그 결과 작가가 마주치게 된 비판들, 요컨대 너무 정치적이지 않냐혹은 너무 감정에 호소하는 것 아니냐와 같은 비판들은 질문 그 자체가 답이 된다. 정확히, 질문 그대로, 바로 그러하다. 웹툰 혹은 코믹스가 응당 탈정치성을 띠어야 하는지의 문제는, 실상 우리가 대중 예술을 예술의 하위 장르로 바라볼 때 생기는 고정관념과 같은 문제이므로, 논외로 하자. 그러면 남은 한 가지, 강풀은 518을 그리는 데 있어서 꼭 감정에 호소해야만 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남는다.

 

정치적 무관심층에 대한 감정적 호소

(Robert A. Dahl)은 인간을 정치적 성향에 따라 4개의 층으로 분류한 바 있다. 권력자, 권력추구자, 정치적 관심층, 정치적 무관심층이 바로 그것이다. 산업주의와 개인주의 성향이 팽배한 현대 사회에서는 사회의 체제적 속성과 정치적 무관심층의 존재가 분리되지 않게 되지만, 그럼에도 정치적 무관심층에 대한 문제적 시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많은 사람들, 조금 심하게 말해서 컴퓨터 앞에 죽치고 앉아 마우스나 딸깍거리며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웹툰이나 보고 있는 사람들마저도 강풀을 용기 있는 작가라고 칭하며 그의 작품에 열광한다. 그들의 대부분은 명백히 정치적 무관심층이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이들이 이토록 정치적인 만화에 열광한다. 이는 강풀 자신이 스스로 당당히 밝힌 창작(연재?) 의도였고, 그 의도는 보기 좋게 성공하여 많은 이들로 하여금 지금껏 무관심했던 26년 전의 한국사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방법론은, 후기에서 작가가 말하는 무조건 재미있게 하자와 같이 단순한 무언가는 아니었다. 사실 [26]은 쾌/불쾌의 관점에서 보면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다. 작가의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때, 이 작품에 재미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무정부주의적인 구도와 피카레스크적 캐릭터의 설정, 스릴 있는 전개, 그리고 끝으로 웹툰이라는 연재물의 특성들(가령 감상자를 애태우는 부분에서 연재를 분할한다든가 하는 식의 고전적인 기법) 정도이다.

 

이런 점들이 대중 예술에 있어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라고는 말하지는 않겠다. 단 이 글에서 문제삼고 있는 질문은, 작가가 작품 면면에 함의하고 있는 정치색 특히 감성적인 정치의식임을 환기하자. [26]이 성공한 이유는 작품이 재미있는 만화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 좁은 땅에서 바로 얼마 전에 영화보다도 더 끔찍한 살상극이 벌어졌는데, 그 주범은 아직도 두 다리 뻗고 잘 살고 있고 사람들은 아무도 그에 대해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분히 의도적인 감정적 시선으로 고발해 사람들, 즉 역사에 아무 관심도 없던 사람들까지도 분노케 만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다큐멘터리처럼 완벽한 사실주의, 역사적 고증을 표방하는 작품을 그렸다면 어땠을까? 사실 그런 시도는 수도 없이 있어왔다. 광주와 관련 없는 대다수의 대중들이 그것들을 외면했을 뿐이다. 하지만 [박하사탕]처럼 관객의 감정이입을 유발하는 극영화가 518을 다룬 어떤 다큐멘터리보다도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권력의 지속운동

[26]의 창작 의도에는 역사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에 대한 통탄도 포함된다. 정치권력의 특성상 모든 권력은 관성적으로 자신을 지속시키려는 경향을 갖는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역사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도, 소급해보면 이러한 관점 내지 혹은 헬드(David Held)가 지적한 체제의 편견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그 때문일까? 사실상 거의 모든 권력을 잃었다고 알려진 전두환 대통령은 (특히 작품 속에서는) 여전히 놀라우리만큼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 특히 광주를 겪은 사람들이 분개하는 이유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 ‘무조건 재미있게 하자에 이어서, 강풀이 후기에서 말하는 두 번째 창작 의도는 현재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였다. 현재의 이야기로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려는 시도인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때광주를 겪은 사람들이 지금겪는 아픔으로 작품 속에 표현되었는데 바로 이 부분이 많은 사람들이 [26]을 감정적이라고 비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달리 어떻게? 차라리 조폭을 영웅처럼 그리면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와 같은 비판은 수긍할 만하다(게다가 테러와 같은 체제 전복적인 발상이라니!). 이는 소위 말하는 조폭 영화들에 대해 여러 번 제기되어온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강풀의 [26] 또한 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 수위는 조폭 영화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뿐더러 비판의 초점 또한 작품이 전하려는 메시지에서 다분히 빗나가 있다.

 

아직 실존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쉽사리 비판할 수 없고 보통 우회하게 되는 길을, 강풀을 비교적 직설적인 방법으로 공격했고 또 많은 이들의 마음에 공감과 문제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나아가 정치적 무관심층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그것이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에 의지했다는 사실만으로 정당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다른 방법으로는 다가가기 힘든 길을 개척한 공으로, 강풀은 찬사를 더 받아도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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