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는 12.16을 끝으로 사라진 것과 다름없이 되어버렸다. ... 그렇게 된 자초지종은 쓰지 않겠다. 떠나보내는 오페라를 마지막으로 찬양이나 하련다.
나는 2005년부터 파폭을, 2011년부터 오페라를 메인으로 썼다. 당시 오페라를 메인으로 선택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속도였다. 게다가 온갖 기능이 기본으로 다 포함되어 있었다. 오페라에 익숙해지다 보니 다른 브라우저는 불편한 점이 많았다. 오페라에는 기본으로 있지만 파폭이나 크롬에는 기본으로 없는 유용한(내가 즐겨 쓰는) 기능을 적어보자면 이렇다. IE는 당연히 논외.
- 마우스 제스처
- 이미지 차단
- 검색엔진 만들기, 관리
- 탭 그룹(파폭에서 다른 방식으로 지원)
- Ctrl + Tab으로 최근 탭 간 이동
- RSS 리더
- 메일 클라이언트
1, 2는 브라우저별 애드온으로 해결된다. 그러나 6, 7이 가능한 브라우저는 오페라 외엔 없다. 파폭은 라이브북마크 기능이 있지만 많은 사람이 별도의 확장 기능(가령 Sage)을 선호한다. 메일의 경우 아예 별도의 프로그램인 썬더버드를 써야 하고.
3은, 파폭의 경우 완벽하지 않고(그래서 Organize Search Engines 같은 확장 기능을 별도로 쓴다) 크롬은 옴니박스인데... 뒤에서 얘기하겠다.
4는 파폭과 오페라가 다른데, 각기 장단점이 있다. 내 회사 PC는 부팅 시 오페라가 실행되고 그 오페라는 퇴근할 때까지 종료되지 않는다. 고정적으로 사용하는 사이트 6개가 탭 고정되어 있고, 추가로 10~30개 탭을 왔다 갔다 하면서 서핑한다. 여기서 탭 그룹은 비슷한 종류의 문서들을 시각적으로 묶어주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한다.
5는 기능이라고까지 할 건 없는데, 현재로서는 크롬에서는 애드온을 통해서도 불가능하다. 현재 많은 크롬 사용자들이 이를 지원하지 않는 데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 파폭에서는 browser.ctrlTab.previews 또는 Supertab 같은 확장 기능을 통해 가능하다. 위에 썼듯 '수십 개' 열려 있는 탭 사이에서 탐색할 때에는, 앞뒤 탭 간 이동보다는 최근 사용한 탭 간 이동이 훨씬 더 편리하다.
딱히 탭이 많지 않더라도, 우리가 윈도우에서 Alt + Tab으로 프로그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걸 생각해보라. Alt + Tab을 눌렀을 때 작업표시줄에 뜬 순서대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게 아니다. Ctrl + Tab 역시 이를 따르는 것이 직관적이며 자연스럽다(이는 일반적으로 MDI 프로그램들에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3을 부연하자. 나는 옴니박스를 싫어한다. 검색엔진 관리가 불편하기도 하고(이건 크롬 자체 UI의 문제다) 검색어 앞에 별도의 키워드를 입력하는 방식도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하나의 단어를 영한사전(키워드 n)에서 찾아본 다음 영문 윅셔너리(키워드 w)에서도 찾아보고 싶다고 하자.
Ctrl + L → n 검색어 → 엔터 → 문서를 읽는다 → Ctrl + L → w 검색어 → 엔터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검색어가 길다면? Ctrl + C와 Ctrl + V를 이용한다고 해도 키워드는 직접 타이핑해야 한다. 검색어와 키워드에 따라 키 입력에 걸리는 시간이 매우 길어질 수 있다. Ctrl, L, 키워드, 스페이스, 검색어, 엔터 이 키들을 왔다 갔다 하는 게 불편한 것이다. 오페라와 비교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크롬만 쓰는 사람은 그 한 가지 방법밖에 모르므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오페라에서는 이 과정이 다음과 같이 바뀐다. 키 입력 수 자체는 아래 화살표(↓) 때문에 많을 수 있어도 키워드와 스페이스를 입력하는 과정이 없으므로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의 동선은 짧아진다.
Ctrl + E → 검색어 → (n 검색엔진이 선택되지 않은 경우 ↓ 두 번 이상) → 엔터 → 문서를 읽는다 → Ctrl + E → ↓ 두 번 이상 → 엔터
덧붙여 검색어가 있는 상태에서 검색엔진을 마우스로 바꾸는 경우, 대단히 훌륭하게도, 오페라 검색엔진박스에서는 엔터를 치지 않아도 바로 그 사이트로
이동한다. 파폭은 검색엔진을 마우스로 바꾼 다음에도 엔터를
추가로 입력해야 한다(단, Search on Engine Change를 설치하면 엔터를 입력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추가적인 키 입력이 쌓이고 쌓여 능률을 떨어뜨린다.
한 가지 더, 파폭과는 달리 오페라의 검색엔진은 탭별로 설정된다. 파폭에서는 한번 검색엔진박스에서 검색엔진을 고르면 그
검색엔진이 다른 탭으로 가도 유지되지만, 오페라는 그렇지 않고 탭별로 검색엔진과 검색어를 관리한다. 가령 새 탭을 열면 검색엔진은 기본값(가령 구글)으로 바뀌고 검색어도 사라진다. 이게 편리한 이유는 (내
경우) 보통 새 탭을 열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검색이기 때문이다.
Ctrl + T → Ctrl + E → 검색어 입력 → 엔터
파폭의 경우 구글이 검색엔진으로 선택된 상태라면 위와 키 입력 수가 같다. 그러나 다른 검색엔진이 선택된 상태라면 다음과 같다.
Ctrl + T → Ctrl + E → 검색어 입력 → Alt + ↑(↓) → Home → 엔터 → 엔터
키 입력이 세 개 많으며 키 사이 거리도 멀다. 뿐만 아니라 오페라의 Ctrl, T, E, 검색어, 엔터 입력은 좌측에서 우측으로의 동선이지만, 파폭의 키 입력은 한마디로 우왕좌왕이다. 게다가 오페라와는 달리 파폭에서는 Alt를 누르지 않고 위아래 화살표만 눌러서는 검색엔진을 선택할 수가 없다. 이렇게 쓰느니 마우스를 쓰고 말지. 위에서 썼듯 Search on Engine Change를 설치해야만 마지막 엔터 두 번이 한 번으로 줄어들 뿐이다.
무의미한 이야기를, 길게 써봤다. 오페라가 아무리 좋아도, 12.16까지의 얘기일 뿐이다. 웹은 격변하고 있고 업데이트되지 않는
브라우저는 도태된다. 파폭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다. 크롬은 아무리 봐도 부족하다. 한 20% 부족하다.
안타깝다. 파폭도 크롬도 사용자들이 불만을 품고 있지만 고쳐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파폭의 미분류 북마크라든가 위에 쓴 크롬의 최근 탭 간 이동). 하지만 오페라처럼 자기가 자기이길 포기한 경우가 어디 있을까. 12.16 이후 13부터의 오페라는 크롬의 짝퉁일 뿐이다. 마우스 제스처는 커스터마이징도 안 되고, 그 훌륭한 검색엔진박스가 사라졌고, 메일 클라이언트도 분리됐다. 하아... 나는 울면서 파폭을 써야 한다.